이야기들 모음/생활이묻어나온이야기

호 박

sams51 2014. 2. 26. 20:47

호 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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햇볓이 따끈한 장날 저쪽 한곳에서,

팔기 시작한지가 몇 날 되어 선가 아님 관리 잘못인가

누우런 잎을 한 호박 모종 몇개가 초라한 모습으로 있기에

'아저씨 이거 둥근호박 이예요?'했더니

'!' 한다.

다시한번

'아저씨 덩쿨 길게 늘어나서 동그란 호박, 늙은 호박 만드는거 그 호박이예요?'

'맞아요' 하길래

몇 본을 사서 학교 담벼락 한켠 모퉁이 빈자리에 둥그렇게 땅을 파고

거름 똥으로 채워서 물을 흠뻑 준뒤 심었지요.

매일 아침에 물주고 눈인사로 인사한지 한 달이 다된 아침에

바라보니 아무래도 자라나는 모습이 이상해 호박잎을 제쳐 보니 아뿔싸 이게 웬일?

마디 호박이잖아?

호박죽 끓여 어머니 드리려던 야무진 꿈은 사라지고,

당당하게 누우런 늙은 호박 만드는 모종이라 하던 그 아저씨가 떠오르며

씁쓰레한 웃음이 나는 아침이지요.

 

누우런 호박!

시장에서 사면 오히려 잔손이 덜 가서 죽 끓이기가 쉽지요.

시장에서 파는 늙은 호박은  껍질도 벗기고, 씨도 정리 해 놓으니까 한결 수월해요.

그렇게 맘먹기로 하니 속상한 아침이 사라지는 오후입니다.

 

지금 학교담장 한켠에서 자라고 있는 마디 호박은 된장찌개나,

계란을 입혀서 부침개를 해 먹던가,

아니면, 채를 썰어서 크게 부쳐 먹지요.

여름 방학 때 하나 씩 따는 재미도 쏠쏠 하니까요.

오히려 마디 호박이 기르는 재미는 더 할 듯싶기도 하지요.

 

연둣빛 고운, 윤기 흐르는 호박을 따서 반으로 나누면 이슬이 송송 돋아나오며

애호박이라 씨도 없는 노오란 속이 나오지요.

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에 찌면 색깔은 더욱 선명하고 곱거든요.

 

잘 쪄내온 호박위에 고춧가루 조금, 마늘 다진 거 조금, 식초를 조금 넣어서

만든 새콤한 초간장을 조금 뿌려서 엄마는 밥 한 그릇을 거뜬히 잡수시지요.

더운 여름이 막 시작 되려고 할 때,

시장 할머니들의 함지박에 애호박이 있기 시작 할 때..,

반찬 걱정이 없어지지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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